세계사 동아시아사 조선 일본 무역 1510에 삼포왜란 계기로 조선이 염포 폐쇄하면서 일본과 교류가 단절됐다가 임진왜란
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밖에 안 된 1607년에 그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정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임진왜란과는 상관없다는 언급을 하며 먼저 국교 재개를 수차례 요구한 끝에 조선 조정이 이를 받아들여 국교를 재개한다.[4] 이후 포로 교환 및 정보 수집 목적으로 3회에 걸쳐 사명당을 비롯한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는 사절을 파견한다. 조선에선 원수였던 일본과 화해하는 게 달갑지는 않더라도 일본과 계속 사이 나쁘게 지내면 언젠가 다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후금(후일의 청나라)이 날이 갈수록 강성해지니 후방에 있는 일본과 좋게 지낼 겸 임진왜란의 전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을 멸망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떤 사람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도쿠가와 입장에선 새로 집권하긴 했지만 1615년 오사카 전투 이전까지는 도요토미 파벌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한 상태라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었던 데다가 그는 조선을 공격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조선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이득이었다.
이후 에도 막부 시기인 1811년까지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회답겸쇄환사가 3번, 통신사가 9번 파견되었다.[5] 처음에는 쇼군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거나 태평성대가 오래 유지되는 것을 축하한다는 등 갖가지 명목으로 파견되었지만 회답겸쇄환사까지 포함하여 6회째인 1655년부터 새로운 쇼군의 취임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보내졌는데, 쇼군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종신직이었으므로 비정기적으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양을 출발해 육로로 동래까지 간 다음 배를 타고 오사카, 강을 거슬러 교토까지 가서 에도까지 이동했다.[6]
마이너 버전(?)으로 류큐 왕국에서 보낸 사절단인 류큐 사절(琉球使節)이 있으며, 이들의 에도 방문을 에도노보리(江戸上り)라고 했다. 류큐 왕국은 당시 일본 본토와 달리 청나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사정을 궁금해했던 많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졌다.[7] 류큐 사절단은 은사사, 하경사로 불렸는데 대등한 관계로 쇼군에게 바로 국서를 보낼 수 있던 조선과 달리 이미 일본에 예속되어 있던 류큐 국왕은 막부의 실력자인 로주들에게만 국서를 보낼 수 있었다.
조선 중후기 일본어 교재인 첩해신어는 동래 왜관에서 조선 통신사 관련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을 주제로 대사가 짜여 있다. 저자 강우성부터가 통신사로 일본에 몇 번 갔다 왔던 사람이고 실제 통신사의 세세한 부분을 그대로 작성하여 관련 연구에 참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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